June 24, 2023

항아리 [선교사 아내 이야기] - 보석처럼

올해로 우리 부부가 함께 한지 25년이 되었습니다. 결혼 25주년을 은혼식이라고 하며 50주년 기념일인 “금혼식”과 함께 대표적인 결혼기념일이라고 합니다. 자손들이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하는 시기이며 부부관계도 빛나게 된다는 걸 의미하며, 자녀나 친지들이 은으로 된 물건을 선물한다고 하네요. 은으로 된 선물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교사로 헌신한 부모를 따라 강도높은 변화를 겪으며, 익숙함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시간을 더 많이 보냈던 아이들이, 어느새 성인이 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뜻을 좇아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을 보면 엄청 대단하진 않아도 나름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 부부도 여러가지 일들을 함께 겪으며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기도 하고, 때론 가장 날카로운 비평가가 되기도 하고, 서로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격려하는 동지가 되어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사이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들의 빛남의 근본은 우리를 소망의 빛으로 불러주신 예수님을 알기에 우리의 공로임을 자랑할수 없고 감사할 뿐입니다.

남편이 선교소식에서 전한 것처럼, 7년간 필리핀에서의 사역을 일단락 짓고 1년간 안식년을 가지게 됩니다. 지난 몇달동안 안식년을 염두에 두고 기도하며 계획을 세우면서 여려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일단 시기적으로 7년의 풀타임 선교사역을 감당하였으니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위암수술 이후 계속해서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아버님과 간병하시며 지치신 어머니 곁에서 함께 해야겠다는 것이 또 중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뜻 1년의 안식년을 실행에 옮기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저희 부부뿐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교사에게 안식년은 필요하지만 부담되고 망설여지는 시간입니다. 재정적인 문제, 사역을 비울수 없는 선교현장의 상황, 제대로 안식을 할 처소가 없다는 것이 대표적인 걸림돌이지요. 저희가 필리핀에서 주로 하는 일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팀사역이라 사역의 공백에 대한 문제는 없었지만, 재정적인 것과 지낼 곳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쉬어감의 필요를 확신하면서 기도를 하던 중. 시부모님이 계신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교사 숙소가 연결되어, 지낼 곳이 생겨서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안식년을 허락해주심이라 확신할수 있었습니다. 병상중에 계신 부모님을 돌보며 자식노릇도 하고, 재충전도 해서 더 열심히 충성하자 다짐하던 중, 갑자기 파송교회에서 저희 가정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번이 두번째 경험입니다. 처음 남편이 아직 혼자였을 때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하고 후원을 하던 교회가, 남편의 멘토이던 담임 목사님께서 은퇴하시고 새로운 목사님께서 취임하시고는 14년간 함께하던 후원을 끊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사역이 한참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시기여서 당황스러웠지만, 성숙한 현지인 리더들이 오히려 우리 부부를 위로하는 가운데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며 더욱 견고해지는 은혜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 관계속에서 겪은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이번에 또 교회의 리더십이 변화를 하면서 갑자기 우리 가정의 전체 후원의 40%를 차지하는 파송교회에서 그 관계를 끊어버린다는 통보를 받으니, 이전의 기억까지 떠오르며 당황스럽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열심히 선교사로서 최선을 다하며 지내고 있는데 어떻게 이러실수 있냐고 하나님께 하소연과 투정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의 인간적인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깨우쳐주시고 위로해주십니다. 지난 두달동안 여러가지 다른 방법으로 계속해서 주시는 한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세미나를 참석하거나 개인 묵상을 하거나 모임이나 예배중에서도 같은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앞서 남편도 나누었지만, 요즘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께서 베드로전서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있답니다. 그중의 한 부분을 항아리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 ...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3-7)” 정말 어려운 환경과 힘든 여건 속에서 시련의 시간을 지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고, 그들에게 비하면 지금 내가 겪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고난의 모습이나 강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시련을 잘 통과하여 이겨냄은 결국 하나님 앞에 서게되는 그날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위함임을 알찐대, 이 시간도 잘 지내며 더욱 견고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소원합니다.

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멀리 선교지에서 살면서 가끔씩 보고나 하고 단기선교팀을 받으며 후원을 받아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으니 편한 길이라고요. 어떤 경험을 통해 그렇게 함부로 말했는지 알수는 없지만, 저는 감히 당당하게 맞섭니다. 선교사라서가 아니라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개인의 마음가짐과 역량이 아니냐고요.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다시 새겨봅니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베드로전서 2:16)” 항아리 독자와 후원자 여러분들께 부탁드립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한다 하면 선교를 그만둔다 생각하여 후원이 중단되어 쉽게 안식년을 가질수 없다고 합니다. 저희 부부는 앞으로 1년간 안식년을 미국에서 보내고자 합니다. 선교지를 떠나지만 저희는 아직 선교사입니다. 필리핀보다 훨씬 물가가 비싼 미국에서 아무리 아끼며 지내도, 생활하려면 여러분의 후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구걸하는 선교사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합니다.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항아리를 쓰면서 여러분들께 약속합니다. 안식년의 자유가 부끄럽지 않은 충성된 하나님의 종으로 살것을요. 계속해서 함께 기도와 물질의 후원와 마음의 격려로 저희와 함께 해주세요. 결혼 25주년과 저 개인적으로는 장기 선교사로의 사역 25주년을 감사하며, 30주년, 40주년 … 한결같이 주님과 동행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