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3, 2016

항아리 [선교사 아내 이야기] – 감사할 수 있는 가정 (2016년 11월)

필리핀에 온 지 6개월이 훌쩍 지났네요. 봄꽃이 떨어지고 여름의 더위가 시작될 즈음 한국을 떠나 마닐라에 도착했을 때 숨이 헉 막히는 더위에 훗날 입이 쩍 벌어질 전기세 고지서를 알지 못한채 에어컨을 켠 방에서 나가지 못하던 날들을 보내며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새 저희 가족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찾아 새로운 날씨와 환경과 주어진 일들에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의 중심 사역지인 International Graduate School of Leadership과 진규와 현규가 다니는 선교사 자녀학교 Faith Academy가 서로 다른 도시에 위치하고, 워낙에 마닐라 근교의 교통체증이 심각한 상태라 아이들은 매일 새벽 5 50분에 집을 나섭니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운동과 특별활동까지 하고 돌아오면 하교길 트래픽에 막혀 저녁 7시가 되어야 집에 옵니다. 우기철엔 무섭게 쏟아지는 비로 길이 물에 잠기는 날들도 몇 번 있었는데, 그 때에는 저녁 9시가 되어서 온 적도 있답니다. 집에 와서 배고프다며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겨우겨우 숙제하고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고 한국생활 4년만에 영어를 많이 잊어버린 아이들이 다시 영어로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고 이렇게 빠듯한 스케줄로 늘 바쁘고 피곤한 날들을 보내지만,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도 사귀고 성적중심의 한국학교와는 다른 여러가지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는 진규와 현규가 기특하고, 이 아이들을 위한 많은 기도들에 감사할 뿐입니다.

제가 처음 선교에 눈을 뜨고 선교사로 헌신할 때, 저에게 부담으로 다가온 사명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부르심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선교사 부모님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상처를 받으며 자라는 선교사 자녀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고, 어린이 사역에 헌신한 저는 MK 사역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직접적인 MK 사역은 아니더라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MK사역에 동참하면서 늘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규와 현규를 키우면서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녀양육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헌신을 따라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며 잘 해보려 애쓰는 MK들의 고충과 상처를 이해하며 삐뚤어지지 않게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제 안의 연약함과 미성숙함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위해 주님의 간섭과 도우심을 늘 간구합니다. 어디선가 듯고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손자/손녀가 없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부모의 신앙으로 저절로 하나님의 손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천국티켓은 단체티켓이 없다.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에서만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많은 선교사/사역자들의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을 이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받은 채로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소명을 찾아 사역으로 바쁜 부모님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지거나, 늘 넉넉치 못한 재정으로 힘들게 사는 부모들을 보며 물질에 기준을 두고 세상으로 향하는 그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진규와 현규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처음 필리핀에 와서 학교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3개월 가까이 쉬면서,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진규가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었는지, 현규가 새로운 곳에서 또다시 시작하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은 저도 남편도 오랜만에 돌아온 낯선 모국에서 각자 살아내느라 힘들어, 겉으로는 별탈 없이 지내던 아이들이 내면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살피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아이들에게도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입니다. 가르치는 모두 교사들도 보수를 받지 않는 MK 사역에 헌신한 선교사들이시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타문화권에서 선교를 하는 부모를 따라 모국을 떠난 MK 들입니다. 현지인들을 위한 사역이 아닌 MK 학교의 교사로서 헌신하는 분들이 후원을 모으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봅니다. 저희들도 신학교에서 교수사역을 한다고 하면 보수를 받는 줄로 생각하셔서 물질후원을 모으는 것이 무척 어렵더라구요. 선교를 오지에서 고생하며 현지인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열방에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세우는 일은 여러모양으로 헌신한 다양한 섬김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항아리 애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저희들의 사역을 통해 주의 제자들이 세워지고 이로 인해 주의 교회들이 세워짐을 감사하며, 진규와 현규가 부모가 선교사임을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가정으로 세워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항아리 독자들께 MK사역을 하시는 모든 분들을 기억하시고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석로/송재은 선교사] 기도편지 (2016년 11월)

감사의 스토리

필리핀 퀘존시티에서 두번째 선교편지로 인사드립니다. 그 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어느덧 증가한 사역들로 인해 분주하였습니다. 이제 마닐라에 온지 6개월이 넘어갑니다. 재미있는 것은 계절이 없이 사시사철 더운줄만 알았던 필리핀도 나름대로(?) 계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잦은 태풍과 홍수로 인해 강가에 위치한 집이 물에 잠길까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덕분에 숨이 막히는 더위는 조금 수그러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나는 날씨입니다. 요즘 한국이나 미국의 동역자들과 연락할 때면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고 하시는데 동일한 시간대에 한 지구촌에 이토록 다채로운 기후들이 공존한다는 것이 여전히 흥미롭기만 합니다.

어찌보면 그 동안 얼떨결에 이곳에 적응해 온 것 같습니다. 지난 6개월을 돌이켜 보며 선하심으로 인도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시는 동역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주님이 주신 부르심에 충성하며 저희 부부의 주 사역지인 IGSL 신대원을 비롯하여 여러곳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IGSL에서는 5월부터 시작한 첫 학기에 목회지도력(Pastoral Leadership) 수업을 강의하였습니다. 더 나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 3개월을 함께 배우고 고민하며 수고한 주의 종들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더하기를 기도합니다.

8월말 방학이 시작되면서는 서울 지역에서 진행된 선교훈련학교 강의를 위해 서둘러 저는 한국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국내외에서 선교에 헌신한 강사들과 훈련생들이 함께 모여 불광동 팀수양관에서 열띤 훈련과 토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교학교 강의와 EAPTC Korea 이사회의를 마치고 마닐라로 돌아와 연이어 IGSL의 개교 35주년 감사예배 및 졸업생 세미나에서 상황화(Contextualization) 를 주제로 강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섬기는 청지기 지도자들을 양성하고자 35년간 한길을 달려온 학교와 교수진 그리고 학생들이 실로 자랑스러웠습니다. 3시간 반의 감사예배가 사람의 공로와 자랑이 드러나지 않도록, 이 신학교 사역을 시작하시고 주관하시는 주님께만 온전히 촛점을 맞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행사 순서가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은혜와 도전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슨 기념식 때마다 유명인사들의 축하인사나 격려사와 더불어 연혁을 짚어보며 업적을 드러내고 자랑스러워하는 자기만족을 앞세운 격식차린 행사들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삶으로 제자화를 실천하려는 교수진들과 겸손히 충성으로 섬기는 스탭들, 그리고 학교를 통해 배운 것을 지식과 학위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보내신 곳에서 복음으로 인한 변화를 추구하며 성실히 주의 길을 따르는 졸업생들의 자취를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드러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런 사역의 현장에서 팀이 되어 사역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말이 좋아 신학교 교수 사역이지, 작은 것부터 본을 보여야 한다는 사명으로 사례는 커녕 후원금을 모아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제자를 세워가는 동역자들을 보며 다시금 도전을 받았습니다. 저와 송선교사의 작은 순종 역시 이렇게 주의 나라를 위해 계속 쓰여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이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도록 기도와 물질로 함께 하는 모든 동역자님들께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10월에는 C국에 사역자 훈련원 사역을 재정비하고 왔습니다. 두 지역에서 기초반과 상급반이 교회 사역자들을 위해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 년 내에 이들을 통해 C국내에도 많은 교회들이 개척될 것을 기도하며 기대합니다. 아프리카 10개국의 사역들 역시 저와 한국 선교팀이 금년초에 케냐와 탄자니아를 다녀온 이후로도 건실하게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감사의 스토리입니다. 또한 주님께는 영광이며 여러분과 저에게는 면류관입니다.
이번 학기에 저는 IGSL에서 문화 개혁론(Transforming Culture) 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교학 교수가 모자라 현재 제게 할당된 학생수만 한 반에 37명입니다. 또한 아시아신학연맹 (ATA) 산하인 As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 주관으로 이루어지는 PhD 박사과정 학생들의 논문지도를 Reader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11월과 12월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Alliance Graduate School 의 한국어 코스에서 선교교육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역에 지혜와 더위에 지치지 않는 체력이 필히 요구됩니다.

송재은 선교사도 IGSL내의 Children school에서 교목(Chaplain) 을 맡아 신학생들과 스탭들의 자녀들을 영적으로 지도하면서 이미 어린이사역을 효과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송 선교사도 새로이 여러 가지 어린이사역들의 책임들을 맡게 되어 시간관리와 건강관리가 관건입니다.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는 진규와 현규도 큰 문제없이 새로운 환경과 학교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다시 영어로 공부하며 처음엔 힘들어 하더니, 이젠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학교 공부에도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처음 아프리카로 갔을 때도, 다시 한국으로 안식년을 갔을 때에도, 또 필리핀이라는 새로운 사역지로 오게 되었을 때도, 어찌보면 무모하다 싶은 결단이었지만 기도 가운데 주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며 지금까지 감사하며 지내오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이 보내신 곳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고 사역을 계속하기를 위한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중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저와 아내가 맡겨진 사역들을 지혜롭고 건강하게 감당하도록
(2) 진규, 현규가 계속하여 학교생활을 잘 하고 하나님의 사람들로 성장하도록
(3) 차량 구입을 위해서 (사역지와 아이들 학교가 거리가 멀고, 교통상황이 좋지 못해 차가 한 대 더 필요합니다.)

동역자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이 이 모든 사역을 가능하게 합니다. 아시아와 열방을 변화시킬  사역자들을 양성하여 열방에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여러분의 지속적인 사랑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한국과 미국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이어 이제는 어수선한 정치계와 사회에 관한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동역자님의 남은 한해 역시 은혜와 감사로 일관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감사의 계절에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함께 하는 동역자님의 가정과 교회에 주님의 평안이 함께 하기를 기도드립니다.

20161123
여러분의 동역자된,
이석로 (송재은, 진규, 현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