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8, 2015

항아리 [선교사 아내 이야기] – 주께서 쓰시겠다 하시니 (2015년 3월)

항아리 독자 여러분, 그간도 평안하셨지요? 아프리카 아줌마가 한국에 와서 생활한지 벌써 3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연고지도 가까운 친척도 없는 한국에 하나님께서 왜 보내셨는지를 늘 질문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선교사역을 위해 공부를 더 하겠다는 남편을 응원하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일하는 주부로 정신없이 살다보니, 남편이 간간이 선교소식을 전할 때에 부록으로 써보던 항아리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의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으며 다시 여러분들의 기도와 응원이 필요하기에 오랜만에 항아리 뚜껑을 열어봅니다. 사실, 한국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고,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며 힘겹게 주님을 잡고 있던 시간들을 나누려면 한 페이지의 항아리에 다 담을 수가 없어서, 오늘은 간단히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기도의 도전을 드리면서  진규가 쓴 기도편지를 함께 담아보려 합니다. 케냐에 있을 때부터 공차며 뛰놀기를 좋아하던 진규가 한국에 와서 힘들게 적응할때 축구를 시작하고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며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해주는 것이 늘 감사하고 기특했습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구체화되는 진규의 소망이 선교사 부모에겐 큰 부담이 되기 시작했고, 생활비를 책임지던 저에게는 한쪽 어깨의 큰 짐이 되었지요. 다음 사역지를 위해 기도하며 또다시 떠남을 준비하며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고, 좀 더 체계적으로 축구를 배우고 싶어하는 진규의 교육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식하다 할 수 있지만, 솔직히 저는 육상이나 축구 같은 종목의 운동은 돈이 많이 안 드는 줄로 생각했었는데, 한국에서 정식으로 축구부를 들어가 배우며 훈련하는 진규를 보니 스포츠 선수로 키우는 것이 얼마나 재정적인 부담이 되는지 모릅니다. 가정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또 다른 새로운 곳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을 함께 기도하며 우리 가정 앞에 전개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림에 있어서 우리가 처해있는 현재 상황을 솔직하게 아이들과 나누니 진규도 마음이 좀 어려웠었나 봅니다. 선교사인 부모가 간간히 동역자님들에게 선교소식을 나누며 기도제목을 나누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기도편지를 쓰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손길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겠답니다. 지인이 소개해준 축구학교에 원서를 제출하려고 써두었던 자기 소개서에 좀 더 자신의 비전과 목표를 더하고,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찡~해 지더라구요. 제가 엄마라서 그런지 몰라도 말입니다. 이렇게 분명히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그 푯대를 향해 전진하려는 아들이 자랑스럽고, 어린 마음에 필요한 만큼 선뜻 뒷받침을 못해주어 부담을 느끼게 하니 미안하기도 합니다.

제 힘든 마음을 조심스레 나누었더니, 선뜻 우리 가정이 한국에 더 지내게될 1년동안 진규의 꿈을 응원하며 힘을 보태주겠다고 나서는 친구들이 있어 이 또한 얼마나 힘이 되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규칙적인 급여를 받으며 3년간 일하던 유치원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는 기간이 또다시 냇가에서 까마귀를 기다리듯 온전히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의지하고 기다려야 하는 삶의 연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선교사로 나섰을 때에는 젊은 혈기와 현실을 넘어선 열정에 두려울 것이 없었는데, 어느새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또다시 선교지로 떠날 생각을 하니 이런저런 염려들이 저를 더 의기소침하게 만들더라구요. 직장을 그만두고, 바로 선교지로 가는 것도 아니고 1년의 시간을 더 한국에서 준비하며 지내야한다는 결정이 내려지고, 파트타임이라도 일할 곳을 찾아보았는데 어느새 나이가 많다고 이력서도 받으려 하지 않는 처지가 된 나를 발견했습니다. 이 땅에서 욕심을 부리고 산 것도 아니고 주의 일 하다가 이 나이가 되었는데, 주님 이거 너무 하시는거 아닙니까? 하며 서글픈 마음에 투정을 부렸더니, 필리핀 사역을 보여주시며 세상의 기준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직도 나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아무도 태워본 적 없던 어린 나귀도, 저 같이 나이들고 염려가 앞서는 중년의 아줌마도, 주께서 쓰시겠다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항아리 독자 여러분, 제게 기도로 힘을 실어 주실거죠?


내가 사랑하는 축구를 통해 주님을 높여 드리고 싶습니다.
(이 진규)

저의 부모님은 케냐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에서 16년간 사역하신 선교사이십니다. 덕분에 저는 케냐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저보다 4살 어린 남동생이 한 명 있고, 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6학년까지 현지인 기독교학교 (Logos Christian School) 를 다니며 영어와 스와힐리어로 공부했습니다. 케냐에서는 아프리카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고, 저는 케냐를 고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학교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면서 노는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온 단기선교팀이 선물로 축구공을 가져다 주어서 축구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케이블 TV가 있는 친절한 이웃집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즐겨보며 축구를 배웠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덕분에 아프리카에서는 축구의 열풍이 있었고, 저도 tv를 보면서 축구선수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공을 차고 운동장에서 달릴 때가 제일 행복했습니다. 축구를 할때 열정과 뿌듯함을 느껴서 나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2012년에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갑자기 오게 되고 태어나서 처음 와본 한국에 적응하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말도 서툴고 한국에 대해 잘 몰라서 학년을 낮추어 초등학교에서 5,6학년을 다시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다니게 된 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있었고 저는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 축구부에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기술과 기본기를 익히며 진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의 장점과 잠재력을 보고 축구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것이 나의 소질과 꿈인 것을 초등학교 6학년 때 확신했습니다.

지금은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 친구들도 생기고,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할수 있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학년을 낮추어 학교를 들어가서 운동을 하다보니, 나이는 같지만 학년이 높은 선배들의 괴롭힘에 중학교 축구부에서 생활하는 것이 조금 힘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축구부에는 크리스천들이 별로 없어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없어서 크리스천 믿음이 있는 운동부에서 행복하게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진로를 위해 기도하다가 축구선수를 양성하는 ‘한국축구학교’를 알게되고 테스트와 인터뷰를 통해 2014 11월에 그곳으로 전학을 할수 있었습니다. 스포츠선교에 대한 비전으로 이 학교를 세우신 교장선생님은 목사님이시고, 단순히 리그에서 성적을 올리기 위한 훈련이 아닌,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개발시키고 발전할수 있도록 기본기부터 체계적으로 훈련을 하는 축구전문교육을 하는 곳입니다. 선교사이신 부모님께는 부담이 되는 교육비 때문에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이곳에서 계속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며 훈련할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축구가 정말 좋습니다. 축구를 할때 행복하고 하나님께서 제게 그런 열정과 재능을 주셨다고 확신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는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서는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축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저의 롤모델인 브라질의 축구선수 카카와 다비드 루이스 같은 선수가 되어 시합장 밖에서도 안에서도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고 롤모델이 되고 인정받는 Christian soccer-player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