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1, 2021

항아리 [선교사 아내 이야기] - 기뻐하시는 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한복음 8:29)

물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지만, 주님께 제 삶을 드리며 제 마음속에 품었던 삶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이루는 것! 그래서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 영혼 구원의 사역 - 선교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주의 일에 전념하고자 신학교에서 배우고, 방학때는 단기선교로 선교지를 경험하고, 선교하는 가정을 꿈꾸며 기도하다 주의 은혜로 선교사를 만나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23년간 선교지에서 지내면서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난 몇달동안 이 기본적인 말씀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친정 어머니의 상황이 점점 안좋아지신다는 소식을 들으며, 연로하신 부모님들 모시고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가운데 안타까움으로 기도만 하다가, 혹시나 하는 일이 생기면 후회하지 않기를 하는 마음으로 미국행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내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더군요. 팬데믹 가운데 해외 여행의 여러가지 제약들이 발견될 때도, 감당할 수 없는 비용들이 한숨만 나오게 할 때도, 출입국에 필요한 비자와 관련된 절차들을 진행하는 과정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때에도,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는 건가 하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곧 뇌수술을 하신 엄마를 간호하며 친정식구들을 섬기는 중에, 나이들고 병들어 예전같지 않은 부모님과, 사춘기 조카들까지 3세대가 함께 하며 부딪히는 일상속의 불협화음을 보게 되면서도, 나는 선교를 명목으로 이런 상황들을 뒤로하고 이기적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의 중심 사역이 되는 IGSL이 개강을 하고, 현규의 학교도 신학기가 시작되자 필리핀 현지와 밤낮을 거꾸로 지내는 것이 힘들고, 아시아 지역의 학생들과 사역자들과의 원만한 소통을 위해서도, 언제 변할지 모르는 출입국의 제약이 열려 있을 때 필리핀으로 속히 돌아가자고 결정을 내릴 때에도 지금 돌아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 갈등하게 되더라구요. 솔직히, 코비드로부터 어느 정도 일상이 회복된 미국에서 몇 주간을 지내고 나니 모든 것이 다시 규제받는 필리핀 생활로 돌아가기가 정말 싫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함께 팀사역을 하는 몇몇 미국인 선교사들이 어차피 대부분의 사역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기간이니 굳이 선교지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서 장기체류를 하는 것을 보면서, 필리핀에서는 18세 이하라는 이유로 집밖에 외출도 못하고 또 다시 감금생활(?)을 해야 할 현규를 생각하니, 미국에서 좀 더 지내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규와 함께 많은 대화도 나누고, 남편과 기도하면서, 아직은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선교현장에 있으니 돌아가는 것이 맞다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필리핀 귀가를 위해 티켓팅을 하고 격리할 숙박시설을 찾고 하는 과정 중에도, 정말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순적하게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한편으로는 미국 체류가 연장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핑계거리를 찾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사역지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미국행은 개인적인 이유로 인한 것이었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동역자들을 만나고 사역의 소식을 나누며 후원모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정의 선교 초창기 아프리카 시절부터 함께 해온 워싱턴필그림교회에서 뜻밖의 선교헌금을 모아 주셔서 큰 부담이 되던 귀국 여행비도 해결할수 있었습니다. 걱정하던 현규도 두달간의 편하고 자유로왔던 미국 생활을 경험하며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어, 남은 2년의 고등학교 생활에 충실하려는 다짐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기꺼이 선교지로 복귀함을 동의하고, 여러면으로 어려운 상황속에도 선교사의 부르심에 최선을 다하려는 부모를 오히려 격려해 주었습니다.

수술도 잘 되고 후유증 없이 회복되시는 엄마를 보며 안심하고 두달간의 미국방문을 마치고 필리핀에 도착했습니다. 이후로 10일간의 시설 격리와 4일간의 자가 격리도 마치고, 이제 필리핀의 팬데믹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솔직히 날씨나 상황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불안과 의혹이 아닌 믿음과 확신으로 주께서 저를 붙잡아 주심에 오늘도 힘을 내봅니다. 지난 주엔 IGSL 졸업생을 통해 베트남에서 요청이 와서, 호치민에 있는 기독교 학교의 채플 시간에 비대면으로 중/고등학생들에게 말씀을 나누는 사역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정이 필리핀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아시아 지역 학생들과 동역자들이 듣게 되면서,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사는 곳도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비슷한 환경에서 우리가 저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는 그들의 감사의 고백이, 큰 울림으로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곳으로 보내신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 하심을 믿고 그분과 함께 이제 또 계속되어질 삶이 기대가 됩니다. 남편이 언급한 것처럼, 어떻게 보면 팬데믹이라는 상황이 이전보다 더 사역의 지경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기도 합니다. 직접 가는 것은 어렵지만, 오히려 온라인으로 새로운 사역들이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나를 부르시고 보내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순종하며 이루어 가는 복된 삶’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됩니다.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를 힘쓰는 저와 항아리 독자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